동네 아줌마들과 나

나도 아줌마다. 애 둘 딸린 아줌마. 첫째가 유치원 다녀야 하니까 아침 9시 등원할 때, 오후 4시 반 하원할 때 왔다갔다 하면서 동네 아줌마들을 종종 만난다. 그 아줌마들도 애를 챙기고 다니니까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동선에서 마주치게 된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 엄마들도 있다. 맨날 만나고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마주치는 일이 며칠, 몇 달 반복되다 보면 그 중에 나와의 친밀도를 더 높이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대상이 꼭 나라서가 아니고, 같은 동네 사람인데 자주 보니까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겠지. 집에 초대하거나, 말을 편하게 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작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난 동네 아줌마들과 그렇게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거다. 동네 아줌마뿐 아니라 행사 외의 다른 친목모임도 거의 안 나간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나가서 쓸 돈과 시간 소모가 내키지 않고, 그 자리의 대화주제(보통 시시콜콜한 가정사)에도 별로 흥미가 없고, 혼자 있는 게 더 좋고. 애당초 나는 약간 심한 수준의 집순이라 컴퓨터와 먹을 것만 있으면 일주일 내도록 한 발짝도 밖에 안 나갈 수 있다. 한창 가계 지출을 줄이고 적금을 어떻게 한 푼이라도 더 넣어볼까 고민 중이라 사람들 만나면서 돈 쓰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집이나 모임으로의 초대(보통 교회 오라는 얘기)에 잘 응하지 못한다. 자꾸 초대하는데 안 가기 미안하니 한 두 번 정도 참석하고는 잘 안 가게 되거나,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하고는 날짜를 잡지 못한다거나. 나도 사람인지라 미안하다. 그 분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혼자 있는 게 편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신 그 분들이 고마워서 만나면 늘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그 자리에선 대화도 밝게 하려고 한다. 만날 땐 즐겁게 인사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열심히 할 일 하고. 그런게 좋은데. 

이렇게 나와 친해지려 했다가 그게 잘 안된 분들과는 차라리 모르는 사이만도 못하게 되는 일이 자꾸 생긴다.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초록색 직선이 내 친밀도, 분홍색 곡선이 날 초대하셨던 분들의 친밀도. 
나는 처음과 늘 같이 주욱 비슷한 친밀도로 만나면 반갑게 기분 좋게 인사하는 정도를 원하는데, 날 초대하시고 먼저 이것저것 주시고 잘 해주셨던 분들은... 내가 어느 정도 이상 친해지지 않자 언제부턴가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난 똑같이 먼저 인사 하고 반갑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가장 먼저 이 패턴으로 간 게 아랫집 언니였다. 언니가 먼저 내게 아기옷도 물려주고, 안쓰는 물건도 주고, 초대해 주고... 나도 나름 노력해서 아랫집 언니와는 여러번 오갔다. 서로 집에 가서 차 마시고, 집 앞 번화가에 놀러도 가고. 언니는 우리 첫째의 유치원도 언니네 아이와 같은 곳에 가길 원했고, 가족끼리도 함께 식사하자며 권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응하질 못했다. 마침 아이 등하원 시간도 달라져서 늘 마주치던 시간대가 달라져 못 만난 채로 여러달이 지나고... 오랜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언니는 냉랭했다. 인사도 잘 안 받아줬다. 

언니가 왜 화가 났을까. 다른 유치원을 선택한 뒤에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오해가 생겼나. 가족끼리 식사하자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내가 날짜 잡기를 미뤄서 서운했을까. 생각해보면 늘 만나자고 했던 건 언니였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언니를 한 번 집에 초대했다. 그래도 서먹한 건 가시지 않았다. 밖에서 마주치면 언니는 여전히 인사를 안 받아줬다. 난 언니한테 호감이 남아있는데... 

그렇게 서먹해진 뒤로 1년 가까이 지났다. 아무래도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니까 오며가며 가끔은 부딪히게 되고, 난 그때마다 계속 "안녕하세요 언니!"하고 크게 인사했지만 언니는 받아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와 말 섞기가 싫은가봐. 나도 점점 인사 정도를 낮춰야 되겠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 잘못했겠지. 아마 더 친밀해지자는 요청을 내가 무시한 걸 거다. 그런데 그게 인사하기도 싫을 정도인 건가? 가슴이 좀 아팠다. 

그런데, 첫째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아이들 엄마들(이하 유치원 엄마들)에게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유치원 엄마들도 나한테 집에 와라, 자기들 모임에 와라, 교회에 와라 여러번 초대했는데 내가 제대로 응하지 않으니까 점점 싸늘해진다. 인사를 점점 안 받아주기 시작했다. 

왜? 사적인 친밀도를 꼭 쌓아야만 하는 건가? 그냥 같은 동네 주민으로 오며가며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로는 안되는 건가?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쪽에서는 모처럼 자기 테두리 안으로 날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한 상황이겠지. 내가 좀 더 요령이 좋았으면 이것저것 핑계를 댔을 텐데. 일이 있어서 바빠서 못 간다던지, 그 밖에 뭐 도저히 갈 수 없는 핑계들... (좋고 나쁜 모든 의미로)오지랖 넓은 한국의 아줌마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요령과 넉살이 좋아야 한다. 난 그게 부족하다. 

얼마 전에 남편도 나에게 그러더라고. 융통성이 없다고. 그 전까진 내가 듣고 읽기로는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그것만 배워서. 난 계속 일관성 있는 태도를 가지려고만 하고 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융통성은 별로 생각 못 했다. 융통성... 융통성이 있었으면 저 동네 아줌마들과도 쭉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엄마가 되고 나서도, 난 엄청 부족하다. 애들한테 본보기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인간관계 쯤이야 멋지게 해결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내가 혼자 있는 게 좋으니까, 그냥 어색해지던 말던 나도 무시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내 기질은 억누르고 스트레스 받더라도 친목에 동참해야 하는 걸까. 아줌마들과의 관계는 복구할 수 있다면 복구하는 게 좋겠지만, 어떻게? 적당히 친목하고 적당히 혼자 지내려면 또 어떻게? 

이런 고민 따위 무시하고 그냥 애한테 책 한권 더 읽어주고 취직할 궁리라도 한 번 더 하는 게 맞을까? 어렵다. 

by JoysTiq | 2019/09/17 14:08 | 인생 레벨업 중입니다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