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22일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 현실에도 해피엔딩이 있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책을 읽을때,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 이거 비현실적이야.'
잘생긴 주인공들과 극적인 인생역경이 그런 기분에 일조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이야기에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이끌어내는 것은 주로 '해피엔딩'이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누구나 주인공 앞에 닥친 우주적인 문제가 마지막엔 반드시 풀리고, 추리소설의 끝에는 범인이 드러나며, 로맨스에서 헤어진 연인은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사는 언제나 갈등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행복해진다. 반복되는 픽션 속의 해피엔딩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행복한 결말은 꾸며낸 이야기 속에나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행복해지기엔 너무 험난하고 복잡하니까.
실제로 나는 내 근처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기분좋다"라거나 "기쁘다"라고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주위를 온통 분홍색으로 가득 채우고 행복한 느낌을 눈 속에 가득 채우며 상대방까지 허공에 붕붕 띄워버리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가득찬 목소리로,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현실 속에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걸까?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해도, 말하는 순간 그 행복이 날아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행복하다는 건 어떤 걸까?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는, 바로 나처럼 '행복'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 봐, 이런게 바로 행복이야."
라고 보여주는 듯한 책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극적이지 않고 꾸밈없는,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결심과 신조, 그리고 이뤄내고자 하는 행복, 그 행복은 접하기 어려울만큼 특이한게 아니라, 어느날 내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순간 오는 버스처럼 우리 근처에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몽처럼 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해리 포터처럼 거대한 적을 눈 앞에 둔 것도 아니다. 해피 엔딩이 그들의 그것처럼 극적일 필요는 없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만 특별한 해피 엔딩,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기분좋은 엔딩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그것은 꼭 큰 고비의 마지막에만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에라도 찾아올 수 있는 평범한 기쁨이다. 그리고 행운이 그런 해피 엔딩을 살짝 도와주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단편적으로는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행인 중의 한 명일 뿐이겠지만, 걸어가는 발끝에는 나만이 향해가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럴 때 가끔 행운의 여신이 윙크 한 번 해준다고 해도, 그다지 나쁠 것은 없잖아.
이 책이 들려주는 것은 그런 이야기다.
이 골목을 돌아서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맞추라고 말한다. 지금 나와 옷깃을 스치는 사람에게 조금 후 찾아올 행복한 결말과 그 후에 또 이어질 이야기. 그것이 내게도 찾아올 것이다.
일상에서 찾아든 행복한 장면,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의 여섯 주인공들이 앞으로도 살아나가듯이, 우리도 살아나갈 테니까. 해피 엔딩은, 계속해서 찾아온다.
# by | 2007/08/22 23:24 | 책 읽던 다락방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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