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31일
'장진'식의 바른 생활, <바르게 살자>
각본/제작 : 장진감독 : 라희찬
출연 : 정재영, 손병호, 이영은, 고창석, 이철민
'장진'식 유머, 라는 표현은 이미 관객에게 친숙한 표현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바르게 살자>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어떤 거지?"라고 알고 싶다면, 왼쪽의 포스터와 장진식 코미디라는걸 아는 걸로 충분하다. 두 시간의 영화 분위기와 내용을 이렇게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니 감탄스러울 지경. 영화의 굵은 줄기를 따라가는 서사는 군더더기가 없고, 코미디의 마무리도 깔끔하다. 장진이 직접 연출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는 '장진 표'다.
장진의 유머는 일상적인 상식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뒤집으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없는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드는 그런 유머다. 영어듣기평가처럼 상식으로 짝지어진 답이 있는 질문에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오는 방식이랄까~ 소재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너를 웃기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없기에 그의 유머는 편하다. 정재영으로 대표되는 장진 사단이라는 말을 들을 때부터 어느 정도의 웃음을 기대하고 보게 되기는 하지만, 장진이 노리는 것이 폭소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부가적인 서비스라 생각하고 편하게 보게 된달까.
장진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데 비상한 재능을 보이는 연출가다. 사람들을 웃기려고는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주제를 드러낼 '방식'으로써 그 특유의 '유머'를 이용하고 있다. 세상을 모습을 뒤집어 보여주는 유머- 그것은 '블랙 유머'다.
영화 <바르게 살자>에서, 정도만(정재영)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대해 경직되었다 싶을 정도로 충실한 순경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소속한 서에 첫 출근하는 경찰서장을 붙잡아 딱지를 뗄 정도로 그의 준법정신은 투철하며, 타협을 모른다. 하지만 경찰로서 장려받을 것 같은 그의 이러한 준법정신은 동료들 가운데서도 그를 소외당하게 만든다. 정도만은 "융통성이 없다"는 그 성격 때문에 윗선의 비리를 캐내다가 형사에서 교통순경으로 좌천되기까지 했다. 언론플레이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생각만 하는 서장에게도 부하의 저런 성격은 한순간 이용해먹기 좋게만 보일 뿐이다.
경찰서장인 이승우(손병호)가 정도만에게 모의 훈련에서의 강도 역할을 맡기는 순간에, 사람들은 정도만보다는 이승우의 속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나 자신이 강도역할을 맡으면서 저렇게까지 '역할에 충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정도만이 옳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완벽하게 완수해내는 일이 -그가 경찰일 때도 그랬던 것처럼- 사실은 도덕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정신이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좋은게 좋다"는 융통성을 요구하게 되고, 여기서 정도만은 일반인의 예상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가 되며, 사실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행동을 반대로 뒤집어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장진식의 '블랙 유머'다.
그러나 장진이 풍자는 '정도만'이라는 캐릭터 하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비꼬는 대상은 경찰서장 '이승우'로 대변되는, 정직한 사람을 옳게 대접하지 않는 이 사회 전체다. 그래서 서장도 망가지게 되고,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시작한다. 사람을 자기 편한대로 이용하려고만 하던 서장이 정도만에게 "이제 전화도 안 받을 생각이거든요."라는 말을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장면은 속시원 그 자체. 그 후로 정도만은 대충 좋은대로 끌고 가려던 서장을 하나하나 골탕먹이는데(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과정이 영화 <바르게 살자>의 백미다. 특히나 정도만은 정말로 '마지막까지' 강도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반전 아닌 반전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그 모습은 충격이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 ^^
갈수록 세련되어지는 장진식 유머.
<킬러들의 수다>를 봤을 때는 뭔가 좀 아마추어같았다.
<아는 여자>를 보고는 물과 기름을 억지로 뒤섞은 듯한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정말 제대로 블랙 유머 작렬이었다.
그리고, 이제 <바르게 살자>에 이르러선 아 매끈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하려는 바도 명확하고 용두사미로 끝나지도 않으며 중간중간 제대로 뿌려진 유머는 영화에 집중하기 딱 좋다. 점점 발전하고 있는 장진식 스타일.
앞으로를 기대해도 좋을듯하다.
# by | 2007/10/31 00:20 | 영화 감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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