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없으면 안 되냐?

얼마전 이모께서 한 상담가를 소개시켜 주셨다. 정확히 그 사람과의 만남을 주선했다기보다, 그 사람이 리더로 있는 스터디 그룹에 초대하신 것이지만, 어쨌든. 그 스터디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친하고 가족같은 분위기라 얼결에 소개받아 들어간 나도 '가족'의 절차를 거쳐야만 할 분위기였다.

스터디 그룹 자체는 꽤 좋았다. 리더의 강의도 훌륭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그 리더라는 분이 젊은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돈도 인맥도 대단한 분이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내게는 우선도가 좀 떨어지는 강의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모께서 날 생각해 초대해 주신거니 일단 한 달은 들어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참여료 7만원.

뭐 다 좋다. 당장 내게 필요한게 아닐 뿐이지 미래엔 틀림없이 필요하게 될 지식이었으니까. 헌데 스터디 그룹 내에서의 이야기가 점점 내 손을 벗어나가는 거다. 내가 말도 꺼내지 않은 일자리를 줄 수도 있다며 컨택이 왔다. 이 일자리는 그저 알바 수준의 이야기. 뭐 그래 여기까지는 공부하면서 돈벌기도 괜찮고, 어차피 과외 뛸까 생각했었으니까 괜찮다고 치는데.

문제는 이모가 그 리더(상담가)를 따로 한번 만나보라고 하셨다는 거다.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일일수도 있지만, 그리고 스터디 중에도 인사치레로 잡담은 한번 해봤지만. 그 사람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한다는게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고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여러 사람들에게 그 노하우를 알려주며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척보기에도 경제나 사회 흐름에 대해 남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뒤에 돌아가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며 저 사람은 어떤 스타일이구나 꿰뚫어본다는게 눈에 보인다. 실제로 스터디 그룹에 참여한 여러 사람에게 많은 조언을 해줘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고 있고. 

하지만, 나한테 있는 문제는 남과 얘기해서 해답이 나올 얘기가 아닌데. 내게 있는 건 그저 도전과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 그는 방법을 제시해줄수 있겠지만, 나처럼 목적이 불분명한 사람에게는 해줄말이 없다는 거다. 목적은 나밖에 정할 수가 없다. 남이 저기로 가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는 얘기잖아. 

그걸 이모한테 말을 할수가 없다. 이모는 정말 그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소개해줬는데. "고민이 있으면 뭐든 털어놔봐~ 그 사람 그런거 좋아해, 남한테 조언해주고 이러는거." 아니, 난 고민이 없거든요. 내 문제가 어떤건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이건 해결해야 할 문제지 고민하고는 다른 거잖아. 없는 고민 지어내서 얘기할까? 더구나 지금까지 내가 이뤄낸게 하나도 없다는걸, 원하지도 않는 상담을 위해서, 날 평가할 남에게 털어놔야 한다는게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그 사람과 얘기 한번 해보는건 그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는 절차 같은걸지도 모른다. 말했듯이 거긴 좀 지나치게 가족적인 분위기라서.(연령대는 내 부모님 정도) 하지만 난 거기 오래 있지 않을 생각이고... 이렇게 말하면 또 이모에게 폐가 되려나. 울 이모도 나처럼 좀 소심한 편이라 몇 번이나 "이 스터디 괜찮니?" "안괜찮으면 말해, 그냥 나가도 돼~" 라고 물어보시니 그 때마다 "네 네 마음에 들어요" ('강의만'으로 치면 괜찮았다. 정말로. 그것만으로 치면.) 라고 대답했던게 이제 족쇄가 된다. 이모랑 친하지도 않은데 모처럼의 호의를 어떻게...

아악 스트레스!! 하도 가보라고 하셔서 네 만나볼게요, 하고 약속을 했으니 전화를 걸어서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할텐데. 내리 나흘째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있다. 아 하기 싫은 걸 해야 한다는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주는 거구나. 미치겠네 정말. 끝내 슬라이드 닫아버리고 폰 내던져 버려도 하루종일 '전화, 전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근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치가 떨릴 정도로 싫은 거지. 나 짝사랑하던 남자한테 전화할 때도 이 정도로 고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원래 고민이 없는 스타일이라서. 해야 되면 그냥 하는데. 누구한테 전화 한 통 하는거 가지고 이 정도로 스트레스 받은 적 없는데. 나흘씩이나.

어쩔까. 그냥 확 다 집어치워버릴까. 상담에서부터 알바, 스터디 그룹까지 전부. 백지로 만들어버리는 거야. 사실 나한테 꼭 필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럼 이모가 민망하잖아.

그럼 그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고 만나서 알바를 하고...
그러면 스터디 그룹도 한달만 하는게 아니라 계속 발을 못 빼겠네. 완전 그 쪽으로 잠기는 건가.

뭐 이러냐.

by JoysTiq | 2008/01/24 17:35 | 부담제로 잡담만찬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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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anigud at 2008/01/24 18:24
지금 당장 그만두시는 게... 나중엔 정말로 발을 못 빼게 되잖아요.
Commented by imc84 at 2008/01/24 20:59
조이스틱님도 좀 ㄱ-; 다른 사람 체면이 걸려있으면 많이 거리끼는 스타일이시군요. 그럴 때는 진지하게 이모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선을 긋는 것이 좋습니다. 이건 틀림없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전 타이밍을 놓쳐서 점점 커지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다가, 결국 더 크게 사람을 실망시킨 적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 때도 실망하게 되는 사람은, 인정이 있기 때문에 나쁜 말은 하지 않아요. 근데 그 기분이 뭐랄까... 참 그렇습니다. "차라리 욕을하지..." 뭐 이런기분 있잖아요 ㄱ-; 참 그래요.
Commented by JoysTiq at 2008/01/25 17:34
라니구드//음... 그런가요. 어차피 몸을 담을 조직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바로 뭔가 행동을 취하는게 낫겠죠. 조언 감사합니다. ^^

임씨84//안 그래도 어제 언니와도 얘기를 해봤는데... 언니도 그렇게 싫으면 하지 마라, 는 쪽이더군요. 참 별거 아닌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 얘기가 저와 전혀 상관없는 제삼자에게서 나온 얘기였다면 결정도 뭐도 참 빨랐을 텐데, 아는 사람 체면이 있으니 정말 대처하기 어렵군요. 아무래도 전화는 이제와서 하기엔 좀 늦은 것 같고, 내일 이모를 만나서 얘기할 생각이에요.
처음 생각대로 이 스터디 그룹 한달만 듣고 끝내겠다고요. 알바 얘기도 접고요. 그런데 그 얘기를 어떻게 또 잘해야 할지... 이모가 "혹시 너한테 폐만 된거니?" 이렇게 미안해하시면 어떻게 해야할지 벌써부터 막막해집니다 ㅠㅠ 제발 "좋은 기회 놓친거다 너~!" 이렇게 나와줘~! (기도 중...)
조언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LaJune at 2008/02/11 16:25
지금은 일이 잘 해결되신건지...@ㅅ@;;
그렇게나 망설일 일이라면 역시 발 빼는 쪽이 정답이겠지요. 지금은 홀가분하신 상태이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JoysTiq at 2008/02/15 02:06
라준//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좀 애매하네요.
결정은... 역시 제가 내려야겠죠. 쉽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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